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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저널 2002 년 통권21호 (커버스토리 I) 2004-02-27

요즘 나라안은 월드컵 열기로 가득하다.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한국팀이 마의 16강 벽을 넘어설 수 
있을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 개최일이 다가올수록 한국팀의 전력은 불안함
그 자체이다. 짧은 기간안에 극복하기엔 버거운 구조적인 문제들이 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팀을 끌고 프로들의 무대를 노크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금번 호에 홍사장을 커버스토리로 소개하게 된 것은 바로 한국이 안고있는 각 분야의 직면한 문제를 그의
인생철학을 통해 풀어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는 재벌의 총수도 아니고 정치적 성공을 이룬 유명인도 아니다. 그런 그의 인생에 한국문제 해결의 키가
있다니 조금은 의아해 할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에서 볼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면 반드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고 할 정도의 
입지전적인 길을 걸어왔다. "기초를 철저히 하고 계단을 오르듯 단계적인 과제에 도전하여 최고가 되고야
마는 정상탈환공랼방식"이 우선은 그렇고 "한다고 정한것은 반드시 해내는 강인한 정신력" 또한 한국의 
일련의 문제에 해법이 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후 거처가 될 동교동 사저 신축공사장의 바로 뒤에 위치한 주)유신프랜테크에서 만난
홍사장의 첫인상은 털털한 이웃 아저씨 같아 보여우선 안심이 되었다. 나서기 싫어하는 충청도 사람이라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어렵사리 허락을 얻어내고 질문을 던지자 그는 메모부터 
시작했다. 철저함이 몸에 배었음을 느꼈다. 그의 풋풋한 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꼼꼼함을 보며 그가 걸어온
인생의 길을 따라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충남 연기군 조치원 110번지에서 출생한 마음 넉넉한 충청도 사람이다. 부친은 홍순용 씨이고 
조치원 최고의 갑부였다. 50년대에 자녀를 대학에 보낼 정도로 경제력과 교육열이 있었다. 9남 1년의 대가족
에서도 그 집안의 여유를 짐작하게 한다. 선친은 건설업을 하셨는데, 당시 건설업이라야 단순해서 학교,
다리공사가 전부였지만, 성공적인 사업운영으로 해방 후 대단한 집안으로 불릴정도로 부자였다. 그러나
홍사장이 오늘날 값진 인생을 이루기 위한 시련이었는지, 그토록 잘나가던 부친의 사업이 장마로 인한 다리
파괴 등으로 쇠락의 일로를 걷기 시작, 끝내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그때부터 홍사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는 전개된다. 당장 장학금이 없이는 학교조차 갈 수 없었기에 항상
일등만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중학교부터 수석으로 입학, 수석으로 졸업했고 리더십
을 발휘하여 학생회장까지, 가난의 역경을 기회로 삼아 더욱 광범위한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개척하였다.

.그런 노력과 정신력의 결실은 더욱 자신감을 갖게 하였고, 명확한 목표를 정해 100%의 결과를 만들어 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졸업 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던 중공업육성책 일환으로 기술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5년제 대전공전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조치원의 소도시 출신인 
그가 대전의 유능한 학생들을 이끈느 학생회장으로 굽힘없는 기상을 드날리며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한다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새겨갔다. 졸업 후 곧바로 효성그룹에 입사하였다. 대기업의 빈틈없는 격무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학구열을 불태워 건국대 전기공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는가 하면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사원
이 되었다. 그러나 일과 배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히 잡고 싶었던 그는 직장을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옮겨 16년간 장기 근속하게 된다.
.입사후 11년이라는 최단기간에 직원으로는 가장 상위직급이라고 해야 할 시설부장에 오른다. 그 속에서도
학업을 지속하여 98년에는 드디어 연세대 공학대학원 전기공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때 발표한 논문이
'원격 제어를 위한 새로운 유도등 시스넼에 관한 연구'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기에 이제부터는 안주
하며 만족해야 될 44살의 나이에 안정적인 16년간의 직장을 뒤로한 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직장생활
20년이면 틀에박힌 생활로 인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 통례이련만 그만은 달랐다.
.그 동안 탄탄한 기술을 배워 왔고, 많은 자격증도 취득하였으며 직원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익혀왔기에
오히려 사업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된 셈이었다. 누구보다 노력했다는 증거와도 같은 소방시설 관리사
자격증을 비롯해서 전기공사 기사1급, 전기기사1급, 소방설비기사1급 등 20여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던
것이다. 한두개의 자격증만으로는 그의 무한한 도전욕을 채울길이 없었다. 곧바로 유신방제 부사장을 시작
으로 한 걸음씩 사업을 통한 사회적 성공으로 다가간다. 유신방제 사장을 거쳐 유신 프랜테크의 대표이사로
마포에 입성, 제2의 창업을 하게 된다. 그런 단기간의 집중적인 노력과 투혼에 힘입어 그는 소방안전진단 
분야에서 일인자라고 자부할 만한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3천평 이상의 건물, 지하철, 지하공구 등의 점검실적 선두주자로서 그의 목표 중 한 분야에 있어서의 
정상탈환은 이룬 셈이다. 그리고 다음 목표로 유신프랜테크 사업분야인 기계설비공사, 전기공사, 소방설비
공사, CCTV공사까지 약 10여개가 넘는 각 종목에서도 괄목할 만한 수위를 달리는 것이다. 짧은 기간내 성공
할 수 있었던 사업의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대하 홍사장은 고기 잡는 방법으로 예를 들었다.

"개울이 흘러 강이 되고, 강이 다시 바다로 가듯 일확천금을 바라는 요행수는 없습니다. 마치 고기를 막고 
품어서 잡듯이 한 가지 기술에 도전하고 실력을 길러서 단계적인 노력을 통해 이룩되는 것이 성공입니다."
아직까지도 그는 고되고 힘든 일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직원들이 주저하는 일도 앞장서서 팔을
걷어 부치며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성공전략을 요약하면 하나의 벽돌을 반복적으로 쌓아 집이 되듯이 기술과 신용을 쌓아서 하나의 
완성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도 그는 "한 우물을 파세요. 그래서 최고라고 자부할 기술과 
실력을 갖추세요" 라고 말한다. 바로 그의 일생을 대변하는 말인 것이다. 한국의 축구나 경제는 어떠했나?
알량한 작은 결과에 만족하며 홍사장과 같은 최고를 향한 단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실력이 한 수
아래였던 일본이 집중적인 투자와 노력을 통해 세계 축구의 벽을 허물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미래를 응시하며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갖추어 가는 준비성이 부족했다. 또한 홍사장과 같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냉철히 인식하고 그 바탕하에 목표를 세워 이루어내려는 뚝심도 부족했다.
.경제도 축구도 목전에 놓여서야 우왕좌왕하며 말만 무성한 꼴이 된 것이다. 자신이 가능한 단계적인 목표를
정해 반드시 해내는 홍사장의 인생 철학이 이 사회를 치유하는 약으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그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회사를 키우는데 모두를 거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이상을
향해 번 돈을 쓰고 싶어하는 것이 더 큰 희망이고 종국의 목표였다. 그래서 다방면에 걸친 사회 활동에도
정열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우선, 인간성 회복운동 추진협의회 서울시 지부장으로서 모교 등에 일기장 보내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또한 민생치한 연구소의 지도위원으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띠 매기, 운전중 핸드폰 받지
않기 운동을 전개하여 법제화까지 이르게하는데 동참해 왔다. 그리고 충청 향우회 중앙회 부회장으로 고향
사랑도 실천하고 있다. 남달리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이기에 고향의 선후배를 누구보다 소중히 하며
아무리 바빠도 주요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여 자신의 뿌리를 잊지않고, 누구보다도 인간성 풍부한 기성
세대로서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봉사에도 빠듯한 일정을 쪼개어 열성을 다하고 있다. 마포구 동교동 방위협의처장, 마포선관위
부위원장, 마포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 마포경찰서 방범 부위원장 등 마포구의 발전과 지역 주민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밖에도 각 문화사업을 지원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등 선행을 해오고 있다. 사업
성공의 궁국의 목표인 보다 많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소방점검 분야에서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 데에도 남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세계 시장이 개방되어도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사명으로 세계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기술력을 집적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반드시 시장개방은 될 것이고 대규모 외국 기업의 전유뮬로 전락할 안전점검 분야를 지킬 한국 굴지의 
기업으로 만들어 외화유출을 막아야 겠다는 절박함도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안전점검 분야에서는 가시적
목표에 접근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타 분야에 있어서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 각 분야에서의 최고를 조합한 
명실상부한 종합건설을 만드는게 그의 꿈이다.
.방만한 차입경영이라든지 인맥을 통한 부적절함으로 성장하려는 회사가 아닌, 분야별 최고의 기술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탄탄한 종합건설을 그는 꿈꾸고 있다. 수많은 건설 회사가 도산하며 서민의 가슴을 울린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기술을 바탕으로 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을 울리는 사업가들은 사업을 통해 사회속에 기여해 나가겠다는 사업가로서의 이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방안전 분야에 그토록 정력을 기울이게 된 데에도 그의 이런 이념 때문이었다. 
수많은 재해가 속출하여 인명을 앗아가는 작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생각했고, 불행한 죽음 뒤에는 
항상 고아나 유족의 비애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런 불행을 막을 근본대책 마련조차 없는 것이 우리나라
이었기에 안전점검이야말로 많은 이들의 불행을 막는 중요한 일이 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사업에 몰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불행의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 화재예방에 주력하는 길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의 뒤안길에서 방치된 수많은 위험을 홍사장은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게는 화재사고 예방입니다. 단 한 건의 인명사고라도 예방할 수 있는
힘이 제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라고 말하는 안전불감증 해결사로서의
사명감이 최단시간 주)유신프랜테크를 안전점검 분야의 선두주자로 만드는 이유가 된 것이다.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성공보다도 국민의 안전을 걱정하며 밤낮없이 달려온 홍사장의 진심어린 노력의 
결과가 얼마나 위대한 쾌거인가 자못 숙연함을 느꼈다. 그는 주)유신프랜테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안전무방비 지대인 한국을 가장 안심하는 나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정부의 노력도 함께 하길 그는 간절히 바란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장로로 2남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 모범적 가정을 바탕으로 회사에서도 인간성 존중
을 실천하며 끝없는 인내로 오히려 직원을 도와가는 사장이 되고 있다.
.부하직원 이라기 보다는 동료로서 협력과 인간적인 배려를 해줄 때 직원과 사장과의 인간적 관계가 형성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직원들 모두가 장기근속자라고 한다. 이런 공동체 이익을 공동분배하고 싶은 마음에
모든 직원을 우리 사주화 하였다. 사내에서는 성실한 마음, 즐거운 마음, 노력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주)유신프랜테크의 마음으로 하여 직원들과 함께 실천하고 있다.

.화합, 믿음, 봉사를 사훈으로 하여 함께 하는 직원의 평생 삶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조치원의 작은 도시에서
성실과 노력으로 시작한 홍사장의 인생ㅇ도 이제 오십을 바라보지만 오히려 20대보다 강한 정신력과 노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 홍사장은 자신의 앞에 펼쳐질 미래를 응시하며 다시금 새로운 각오로 프로정신, 고객만족, 인간존중을
캐치프레이즈로 하여 진정한 성공의 기준을 만들고, 이 땅의 청년들에게 희망의 목표가 되는 선구자로서 제 
2의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